유학에서 돌아와 수요성경공부 모임을 이끌고 있던 곽선희 목사와의 운명적인 만남, 상가의 자그마한 교회에서 시작한 소망교회가 한국을 대표하는 교회로 성장하기까지 교사로서 또 1대 장로로서 교회의 성장을 온몸으로 이끌었던 이야기, 그리고 2대 목사로 세대 교체하면서 발생했던 교회 내의 갈등과 이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 등이 진솔하게 그려져 있다.
또, 지인의 소개로 무작정 동대문 원단시장에 뛰어들어 6개월 동안 월급 한 푼 못 받고 일했던 이야기, 그의 사업 멘토가 된 김교석 회장과의 만남, 그리고 그에게서 동업 제안을 받고 본격적인 원단 사업을 하게 된 이야기 등 맨몸으로 원단 섬유 산업에 뛰어들어 숱한 어려움을 극복해가며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저자의 모습 등이 담겨 있다.
영원한 교회의 원로이자 세상의 어른으로, 늘 겸허하고 넉넉한 마음을 잃지 않은 저자가 걸어온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행복한 선택’의 삶의 여정이 따스한 별처럼 곳곳에서 빛난다.
■책 속에서
❖프롤로그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 14:18)
일곱 살 때였다. 8·15 광복을 맞아 씨름 축제가 전국 곳곳에서 열렸다. 씨름판 구경을 나갔던 어느 날, 며칠 동안 뵙지 못했던 아버지를 만났다. 반가워서 달려가니 아버지께서 나를 번쩍 안아 올리셨다. 그리고는 노점 좌판 앞으로 데려가서 먹고 싶은 것을 고르라 하셨다.
나는 사과가 먹고 싶었지만, 워낙 과일이 귀하던 시절이라 사과는 비쌀 것이라는 생각에 삶은 고구마를 가리켰다. 아버지께서는 내 마음을 어찌 아셨는지 얼른 사과를 손에 쥐어주셨다.
나를 안아주셨던 아버지의 든든한 팔, 따뜻한 가슴, 사과를 쥐어주시던 다정함이 지금도 느껴지는 것만 같다. 어린 시절의 기억 한 조각이지만 그 장면의 느낌이 이리도 생생한 것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주 떠올렸기 때문이리라.
그 순간의 경험은 내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세계관과 신앙관의 밑바탕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어리고 분별력이 없는 내가 무엇을 선택하든, 아버지의 품 안에 있는 나는 그 결과를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아버지께서는 내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시고, 그 결과로 나를 부드럽고 따뜻하게 이끌어 주실 것이다. 언제나 나를 지켜봐 주실 것이다.
이런 믿음이 있다면 어려운 갈림길 앞에 서더라도 지나치게 근심하거나 위축되지 않을 것이다. 필요할 때마다 과감한 선택을 해볼 수 있고, 그 순간을 즐기자는 마음으로 마음껏 활약을 해볼 수도 있다. 실수도 실패도 할 수 있지만 그게 끝이 아니라고, 다음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금방 마음을 추스를 수도 있다.
이것이 책의 제목에 쓴 ‘행복한 선택’의 원리다.
“행복한 선택이라는 게 무슨 뜻입니까?”
8년 전 책을 처음 펴냈을 때 ‘행복한 선택, 박래창 장로의 인생 이야기’라는 제목을 보고 이렇게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았다.
‘행복한 선택’이란 이런 것이다. 나한테 어떠한 일이 주어졌을 때, 그 일이 더러는 내가 원한 일이 아니었고, 하기 싫은 일일 때도 있었고, 내가 감당하기 벅찬 경우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서 감당하기로 나는 늘 ‘선택’을 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아무리 큰 어려움 속에서도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함께하는 분들이 늘 옆에 있어주었기에 감당할 수 있었다. 그 순간들이 쌓여서 분에 넘치는 성공의 길이 열렸다. 그것이 내게는 ‘행복한 선택’이었다.
하나님께서 나 박래창이라는 사람의 인생을 온전히 주재하고 계시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들어 쓰시기 위해 시련을 주신 것이라면, 어차피 그 잔을 피할 수 없을 것이기에 순순히 그 뜻에 따르기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다만 이 원리를 내가 늘 기억하고 살았던 것은 아니다. 인생의 바닥까지 떨어진 것 같고, 어디에도 희망이 없는 것 같아서 절망하고 좌절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열두 살까지 내가 부잣집 도련님으로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랄 수 있게 해줬던 토대는 6·25 전쟁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구세군 사관(목사)이셨던 아버지는 인민군에게 ‘목사라는 이유’로 목숨을 잃으셨고, 그날 이후로 우리 형제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반동의 자식’으로 공포 속에 살았다. 친척집을 전전하는 애물단지가 되고, 닥치는 대로 돈을 벌어야 고등학교라도 졸업할 수 있는 처지가 됐다. 결핵으로 쓰러져 야간 대학을 중퇴해야 했던 스물세 살, 군에서 제대하고 보니 갈아입을 변변한 옷도, 차비도 없어서 어떻게 일자리를 찾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던 스물일곱 살,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남아 있는 것이 있었다. 할아버지 대부터 시작된 신앙의 유산이었다.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심으로써 내게 ‘순교자의 아들’이라는, 무엇보다 귀중한 자산을 물려주셨다. 외할머니를 비롯한 가족들도 모두 나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 주었다. 기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기에, 나는 혼자 있어도 결코 고아가 아니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예배당에 가서 앉아 있으면 덜 힘들게 느껴졌다. 어딘가 길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이 피어오르곤 했다.
“저에게 제발 아무 일이라도 주십시오. 무엇이든 할 일을 주시면 일평생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렇게 서원기도를 한 뒤로 처음 제안 받은 일이 교회학교 교사 봉사였다. 처음에는 ‘나는 돈벌이 일자리를 구한 것인데?’ 했지만 순종하기로 했을 때 하나둘 새로운 지경들이 펼쳐졌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바닥까지 내려가 있던 삶이 한참 위로 올라와 있었다.
사는 동안 어려움은 계속해서 닥쳤다. 겨우 찾아낸 사업은 매일매일 전투하듯 임하지 않으면 곧바로 도태될 정도로 치열한 업종인 패션 텍스타일 사업이었다. 집중하고 몰입해서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그 일을 무척 사랑했고 잘 해내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떻게 그 일을 40년이나 했을까 싶을 만큼 험난한 나날들이었다.
신앙생활 안에서 맡겨진 역할들도 마찬가지였다. 교회학교 교사로시작한 봉사는 42년간의 장로 직분으로 이어졌다. 소망교회 45년 역사 중 42년 동안 시무장로와 은퇴장로로 섬긴 것이다. 교회 안팎에서 감당해 온 수많은 직분과 역할들 중에는 어느 하나 녹록한 것이 없었다. 늘 어렵고 복잡한 상황 한가운데로 떨어졌다. 내 능력만으로는 감당할 수도 성공시킬 수도 없는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늘 믿는 구석이 있었다. 한탄하고 푸념하고픈 마음을 내려놓고 잠잠히 생각을 가라앉혀 보면 나를 든든히 받쳐주시는 하나님의 존재가 느껴졌다. 일곱 살 나를 안아주시던 아버지의 팔과 같고, 내 손에 사과를 쥐어주시던 아버지의 다정함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서 돌아보면, 나를 쓰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충실히 그 뜻에 따르기만 하는 되는 것이었다. 어떤 일이 펼쳐질지 기대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런 ‘행복한 선택’의 원리를 이 책을 통해 나누고 싶다. 다행히 8년 전 처음 책을 펴냈을 때 수많은 분들에게서 공감하며 읽었다는 말을 들었다. 어찌 보면 내 또래 한국인이면 누구나 겪었을 평범한 이야기들이지만, 그 사이 사이에 담아 놓은 작은 법칙과 메시지들을 발견해 준 분들이 많았나 보다.
이번에 수정 작업을 하기 위해 다시 찬찬히 되짚어 보니 이전에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던, 삶의 고비마다 존재했던 하나님의 뜻하심을 깨닫고 크게 은혜를 받기도 했다. 이 책을 읽는 모든 분들이 삶의 여정 안에서 ‘행복한 선택’의 법칙을 발견하고 경험해 나가기를 기도한다.
■책 소개 ➋
교회학교 교사 40년, 장로 28년, 사업가 40년의
박래창 장로가 들려주는
박래창의 인생, 사장 인생, 봉사 인생 그리고 장로 인생!
교회학교 교사 40년, 장로 28년, 사업가 40년 등 숨 돌릴 겨를 없이 한평생을 살아온 박래창 장로의 인생 이야기.
먼저 ‘1부 박래창의 인생’에 그려져 있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 외삼촌의 손에 이끌려 시작한 서울에서의 생활, 맨몸으로 뛰어들었던 동대문 시절의 이야기, 그리고 결혼과 신앙생활 등은 저자인 박래창 개인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지나온 아픈 우리의 현대사이기도 하다. 이런 숱한 고난에 무너지지 않고 기꺼이 살아내고 이겨내는 모습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2부 사장 인생’에서 지인의 소개로 무작정 동대문 원단시장에 뛰어들어 6개월 동안 월급 한 푼 못 받고 일했던 이야기, 그의 사업 멘토가 된 김교석 회장과의 만남, 그리고 그에게서 동업 제안을 받고 본격적인 원단 사업을 하게 된 이야기 등 맨몸으로 원단 섬유 산업에 뛰어들어 숱한 어려움을 극복해가며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저자의 모습은 독자들에게 많은 감동을 줄 것이다.
또 ‘3부 봉사 인생’에는 사업과 교회 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면서도 노회·부노회 회장, 전국장로회 회장, 한국장로신문 사장, 기독실업인회 회장, 아가페(소망교도소) 이사 등으로 활동한 이야기 및 교회에서 북방선교 부장을 오래 역임하면서 중국·북한 지역 선교를 주도한 이야기, 그리고 현재의 CTS문화재단 이사장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봉사 경험이 담겨 있다.
마지막으로 ‘4부 장로 인생’ 등에는 유학에서 돌아와 수요성경공부 모임을 이끌고 있던 곽선희 목사와의 운명적인 만남, 상가의 자그마한 교회에서 시작한 소망교회가 한국을 대표하는 교회로 성장하기까지 교사로서 또 1대 장로로서 교회의 성장을 온몸으로 이끌었던 이야기, 그리고 2대 목사로 세대 교체하면서 발생했던 교회 내의 갈등과 이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 등이 진솔하고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목차
프롤로그
1부 박래창의 인생_기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1. 기도 후원자들이 만들어준 큰 언덕
조각구름의 징표|신앙의 뿌리, 물우리교회|뜨거운 밥, 뜨거운 눈물|최악의 상황에서 꽃피는 사랑
2. 너와 함께 하니 두려워 말라
가장 안전한 피난처는 하나님의 품|참말을 하는 언어와 습관을 배우다|모르고 번 가장 귀한 장사 밑천
3. 몸부림쳐도 안 될 땐 바닥에서 쉬어가라
발버둥 쳐도 안 되는 일|바닥에 떨어졌을 때는 쉬어 가자|서원기도의 결과
4. 바닥을 치고 올라가다
순교자의 아들|무일푼 청년을 믿어준 권사님|가장 귀한 인연, 아내를 만나다
2부 사장 인생_다섯 달란트 받은 종의 모험
1. 느낌의 순도를 높여라
청년들은 갈급하다|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다|기회와 가능성의 무대, 동대문시장
2.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사업이란 숲속의 나무와 같다네|창조는 사람 간의 관계에서 시작된다|존중하면서 자유로울 수 있는 훈련
3.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의 모험
모험과 도전이 즐거운 이유|위기를 극복하는 여유가 곧 성공의 시작이다|우물 안 개구리가 옹벽을 뛰어넘다|순도 높은 집중과 몰입이 차이를 만든다
4.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
전 재산을 팔아 감춰진 보화를 사다|도망갈 수 없어 바로 서다|하나님의 유격훈련을 성공적으로 감당하다|두려움이 너무 크게 보이면 실패한다|싸움으로 못 이길 때 이기는 방법
3부 봉사 인생_복 주려고 붙잡으시는 하나님
1.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
기도의 끈으로 이어진 하나님 약속|하나님께 징표로 받은 일, 교회학교 교사|바디매오의 기적은 이 시대에도|제자들의 성공을 보는 스승의 보람
2. 부족한 것이 능력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부흥회를?|필요한 곳마다 유능한 인재가|인민대회당에 울려 퍼진 복음
3. 오묘한 역할을 주시는 하나님
작은 역할로 큰 사역을|묵묵히 함께하는 자리의 보람|교회를 살려낸 일에 참여한 이야기|언젠가 올 통일의 그날을 위해
4. 잡힌 바 된 것을 잡으려 달리다
순종은 축복의 통로|하나님 나라 재정을 잘못 쓰면 죽습니다|행복한 기업인, 행복한 부자|인정도 칭찬도 상급도 하나님이 주신다|젊게 소통하면 늙어서도 행복하다
4부 장로 인생_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기쁨
1. 장로의 할 일
오랜 담을 허무는 작은 사건|모두에게 유익이 되는 해결책은|비교해서 합격점을 받을 지도자는 없다|준비된 옥토 위에 피어난 한국 교회
2. 돌 항아리에 물을 붓듯이
하나님의 선한 방법을 분별하는 지혜|사랑할 대상과 함께 행복하라|교회 갈등은 옳고 그름 아닌 생각 차이
3. 다섯 가마 쌀의 의미
목숨을 걸고 섬겨야 하는 직분, 장로|교회 지도력의 최고 가치는 교회 회복|젊고 가장 바쁠 때 장로가 돼야 한다|한국교회가 지금 할 수 있는 일
4. 장로여서 받은 축복
장로의 탈을 쓰면 자유하다|저도 자라서 장로가 될래요|오래 생각하던 숙제를 마치다|잊었던 꿈을 기억하시는 하나님|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저자
숨 돌릴 겨를 없이 한평생을 살아온 박래창 장로.
교회학교 교사 40년, 장로 28년, 사업가 40년의 그의 인생은 두려움 없는 행복한 선택의 연속이었다. 상가의 자그마한 교회에서 시작한 소망교회가 한국을 대표하는 교회로 성장하기까지 그는 교사로서, 또 1대 장로로서 교회의 성장을 온몸으로 이끌었다. 또 맨몸으로 뛰어든 사업에서도 월급 한 푼 못 받고 몸으로 때우던 시절을 겪어내고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며 한국경제 성장의 한 부분을 담당하였다. 2009년에 교회와 사업에서 은퇴하여 지금은 원로장로로 바쁘게 살고 있다.
사업과 교회 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면서도 노회·부노회 회장, 총회회계·재정 부장, 전국장로회 회장, 한국장로신문 사장, 기독실업인회 회장, 필레마 이사장, 군선교연합 이사, 아가페(소망교도소) 이사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현재 CTS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있다. 교회에서는 북방선교 부장을 오래 역임하면서 곽선희 목사님을 도와 연변과기대 설립건축, 평양과기대 설립건축, 용정교회·중국신밀교회·몽골교회 건축 등 중국·북한 지역 선교를 주도하였다.
“여생이 저녁놀처럼 아름답게 물들어 비쳐지기를 소원”하는 그는 그의 인생을 글로 풀어내는 작업을 통해서 자식과 손자들, 그리고 신앙의 후배들과 함께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싶어 하며, 또한 그가 겪어온 인생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전해지기를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