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간 교육자의 길을 걸어온 강미애 교장 선생님의 자전적 에세이 《꿈의 속도로 걸어가라》가 출간됐다. 이 책은 산골 소녀가 교단에 서고 교총 회장을 역임하기까지 걸어온 길을 반추하며 삶에 흔적을 남긴 소중한 순간들을 기록한 것이다. 지금의 강미애라는 사람이 있기까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등 삶의 태도와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짧은 단상과 그에 따른 아름다운 추억, 재미난 에피소드가 진솔하게 담겨 있다.
그녀의 인생을 한 단어로 압축한다면 ‘도전’일 것이다. 이는 그동안 그녀가 걸어온 길이 증명한다. 초등학교 교사, 장학사, 교감, 교장, 교총 회장까지, 늘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며 달려왔다. 더 나은 학교, 더 나은 교육을 꿈꾸며 멈추지 않는 그녀의 모습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녀에게 도전은 ‘새로운 시작이고, 열정이고, 지치지 않는 동력’이다. 이제 그녀는 34년간의 교직 생활을 마감하고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하려고 한다. 이 책은 단순한 인생 회고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 책 속으로
교대를 졸업하고 석곡초등학교에 발령받았다. 나의 첫 수업은 3학년 음악 ‘옥수수 하모니카’ 노래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때가 1988년이었으니, 지금처럼 MR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목청이 좋아 목소리로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어쨌든 오르간을 연주해야 했다. 그날 어찌어찌 끝냈는데 옆 반의 선배 선생님이 “음이 어딘가 어색하던데? 4분의 4박자가 너무 느려”라고 말씀을 하셨다. 음악에 대한 조예가 있던 것도 아니고 오르간 연주 실력이 좋은 것도 아니어서 더듬더듬 건반을 누르다 보니 늘어진 4분의 4박자가 되었나 보다. 그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으니 얼마나 이상했을까. 순간 머리가 ‘띵!’해지면서 혹여 우리 반 아이들이 ‘옥수수 하모니카’ 노래를 틀리게 부르지 않았을까 하고 걱정이 되었다.
_<나의 첫 수업과 옥수수 하모니카> 중에서
겨울방학 중 어느 날, 집필 계획에 관한 문의도 할 겸 교육과정실을 들렀다. 아무도 없는 방엔 먼지가 가득하고 자료가 널브러져 있었다. 청소와 정리가 시급해 보이는 모습에 나는 팔을 걷어붙이고 혼자서 몇 시간 동안 쓸고 닦았다. 잔뜩 쌓여 있던 자료들도 가지런히 정리했다. 걸레를 몇 번이고 빨아도 시커먼 얼룩이 지워지지 않아 꽤나 고생을 했다. 그 후 방학이 끝나가는 1월 어느 날 교육청에서 전화가 왔다. “교육과정실에서 근무하지 않을래요?” 소리 없이 교육과정실 청소하는 모습을 보고 파견을 권유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되었다.
당시 나는 모교인 갈담초등학교에 근무하고 있었다. 갈담초등학교는 교육부 인성교육 연구학교로, 교육부 연구학교는 가산점이 주어져 승진을 위해 서로 근무하고 싶어 하는 학교였다. 그렇기에 승진 부가 점수를 포기하고 도교육청으로 파견 근무를 간다는 것은 교사에게 상당한 모험이고 도전이었다. 교육청에 파견을 가면 연구학교에서 실제로 근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연구학교 점수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교장 선생님께서도 “나중에 후회할 거야. 굳이 고생길을 찾아가지 않았으면 해”라고 말씀을 하셨지만, 난 굳이 고생길을 찾아 교육과정실 파견을 지원했다.
_<새로운 세계로의 날갯짓> 중에서
전문직 시험을 보기로 결심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전문직 시험 준비는 철저한 계획하에 이루어졌다. 아침 6시부터 7시까지 한 시간 공부한 후에 7시에 아침 식사 및 출근을 하고 오후 4시까지 모든 업무를 끝낸 뒤 4시부터 6시까지 공부를 했다. 퇴근 및 저녁 식사를 하고 8시에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나서 다시 9시부터 11시까지 공부를 했다. 매일 본업을 하면서 최소 5시간 이상 공부한 것이다.
그 당시 전문직 시험은 교육학 전반을 공부해야 했는데, 교육학이라는 것이 범위가 넓어 공부하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게다가 논술시험도 있어서 그 준비까지 해야 했다.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공부를 나 혼자서 해야 했다. 혼자 외우고 혼자 문제를 푸는, 지루하고 고단한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2년 정도 공부한 끝에 전문직에 합격했다.
_<전문직에 도전하다> 중에서
내가 세종교총의 회장 역할을 시작할 때 세종교총은, 이름은 ‘세종교총’이었지만, 아직도 법적으로 재정적으로 충남 소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세종교총 회장직을 수락한 순간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은 충남교총과의 분리와 세종교총의 법인화였다. 이 역할을 수락하면서도 내가 할 일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는데, 세종교총이라는 상자를 열어보니 역시나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이는 그간 내가 교직 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영역의 일이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그래도 어쩌랴, 일단 시작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조직을 꾸리는 일이었다. 내가 세종에 근무는 하고 있지만, 학교 밖의 사람들에게 그리 많은 관심을 두지 않았던 탓에 조직을 꾸리려 해도 쉽지 않았다. 그에 더해 교원 중에 세종교총에 관심 있는 교원들도 그리 많지 않았다.
_<세종교총을 리뉴얼하다> 중에서
학교에 근무하고 있으면 아이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다. 아침에 출근할 때면 운동장 저 너머에서 그네를 타고 있던 아이들이 손을 흔들면서 “교장 선생님, 안녕하세요!”라고 한다. 점심 먹고 학교를 한 바퀴 돌고 있으면, 4층 창문 너머로 “교장 선생님, 사랑해요!”라는 소리가 들린다. 또 이런 학생들도 있다. 초등학교에는 돌봄교실이 있다. 돌봄교실이 끝나는 시간인 4시가 넘으면 교장실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아주 쑥스러운 표정으로 들어와 “사탕 하나 주세요”라고 한다. 그럼 안 줄 수가 없다. 냉동실에 꽁꽁 얼려둔 초콜릿을 하나 꺼내주면 눈꼬리를 곱게 접으며 “고맙습니다”라고 답한다. 이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학교 안에서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사랑을 먹고 산다. 아이들도 분명 선생님들의 사랑을 먹고 산다. 학교는 사랑을 먹고 사는 곳이다.
_<교장실을 찾는 아이들> 중에서
목차
◼ 목차
프롤로그_ 오늘도 나는 도전한다
1부_ 지금의 나를 만든 것들
* 행복했던 나의 어린 시절
내가 살던 고향은
외로운 늦둥이
참 잘 놀았어요
기억 속의 그림
공부에 눈뜨다
* 나의 뿌리 나의 하늘
가난이라는 것
가난한 대학생을 위로한 것은 책이었다
카네기를 만나다
엄마는 강하다
늦복 있는 박장례 여사
엄마의 철학으로 나의 철학 세우기
2부_ 교육자의 길을 걷다
* 초등학교 교사
나의 첫 수업과 옥수수 하모니카
나도 할 수 있다
변화를 고민하다
* 장학사
새로운 세계로의 날갯짓
피와 땀으로 탄생한 《전라북도 생활》
전문직에 도전하다
* 교감, 교장, 세종교총 회장
일하기 좋아하는 교감
마음이 머문 그곳, 대강초등학교
자연을 벗 삼아 자전거로 바람을 가르다
세종에 가다
종촌초등학교 이름에 얽힌 에피소드
학교 문화 만들기
내가 꿈꾸는 학교
뉴욕의 친구들을 사귀다
삶이 교육이 되는 아날로그 교육
나의 마지막 학교생활, 세종도원초등학교
슬기로운 코로나 생활
교장실을 찾는 아이들
세종교총을 리뉴얼하다
3부_ 꿈이 있는 사람은 멈추지 않는다
* 나를 계속 나아가게 만드는 것들
영원한 목마름, 공부에 대한 열망
백문이 불여일견
네팔 고르카에서의 봉사활동
관성으로만 살아갈 것인가?
우리 병선이
사랑해수
멋진 아들, 재혁
*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학교라는 첫 번째 사회
부모라는 울타리가 없는 곳
영원한 숙제, 돌봄교실
학교는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
오카방고 델타의 가치
수면 아래 오리의 물갈퀴는 지금도 쉬지 않고 있다
학교는 우리나라의 미래다
저자
◼ 지은이
강미애
현직 교장 선생님이자 1988년 처음 교단에 선 이후 34년간 교직에 몸담아 온 교육자. 전주교육대학 졸업 이후 초등학교 교사, 장학사, 교감을 거쳐 현재 세종도원초등학교 교장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세종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이사를 역임했다.
현장에서의 오랜 교직 생활과 행정가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의 본질을 바로 세우고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미래교육 체제를 구축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