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이 시대의 대표 지성,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 마지막 서원으로 남기고
영원한 영면에 드시다
“기러기들처럼 날고 싶습니다.
온 국민이 그렇게 날았으면 싶습니다.
소리 내어 서로 격려하고 대열을 이끌어가는
저 신비하고 오묘한 기러기처럼 날고 싶습니다.”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는
이 시대의 대표 지성 고(故) 이어령 선생의 마지막 서원을 기록한 책이다.
2022년 새해를 맞아 온 국민이 눈부신 하늘로 다시 한번 날아올랐으면
좋겠다는 선생의 간절한 염원을 담은 본 책자는 14년 전 선생이 지은
[날게 하소서]란 제목의 시에 선생의 구술 해설을 입혀 서문을 완성했다.
거기에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출판사의 사정으로 묵혀두었던 열세 가지 ‘생각’에 대한 원고를 더해
한 권의 책으로 묶은 선생은 새해 소원 그대로『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란
제목의 새 옷을 입히고
김병종 서울대 명예교수에게 붉은 기운의 낙관을 직접 청해 책을 완성했다.
“개인이나 국가나 도저히 걷는 것으로 해결 안 될 때 그때 마음속으로 기도하는 하나의 소원이 있을 겁니다.
나에게 날개를 달라는 기도지요. 그래서 나는 실제로 해마다 그렇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게 바로 이 시를 낳게 한 동기요, 기도였던 겁니다.”
“해마다 해가 바뀌어도 양 진영으로 갈라져 싸움박질을 하는 정치인들에게는 평화의 상징 비둘기의 날개를 주시고,
살기에 지쳐 주눅 든 가난한 자들에게는 용맹한 독수리의 날개를 주시고,
풀이 죽은 기업인들에게는『갈매기의 꿈』 속 조나단같이 비행할 수 있는 날개를 주소서.
진흙탕 싸움에 말려들어 이념 싸움을 하는 지식인에게는 구름보다 높이 나는
종달새의 공허한 날개를 보여주소서.
하나님께 드리는 날개의 소원을 담은 기도는 그칠 줄을 몰랐다.
뒤처지는 자에게는 제비의 날개를, 설빔을 마련하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공작의 날개를, 홀로 사는 노인에게는 천년학의 날개를 주소서.
핵가족으로 흩어지고 이혼하는 불행한 사람들에게는 원앙새의 사랑의 깃털을 주소서”라고 기원했다.
시인 이상의 소설 [날개]의 마지막 장면처럼,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은빛 날개를 펴고 눈부신 하늘로 날아오르는 경쾌한 비상의 시작, 이 절망의 벼랑 끝에서 모든 사람이 함께 살아갈 날개 하나씩을 달아주소서.”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를 통해 고(故) 이어령 선생이 시를 쓴 지 14년 만에
새 책의 머리말로 만나는 시, [날게 하소서]와 그의 간절한 염원이 담긴 해설,
그리고 한국 문화의 원형들(아키타이프)이 실려 있어 특별히 아끼셨던
열세 가지 이야기를 통한 마지막 메시지.
이 모두를 한번에 만나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마련해보시기 바란다.
책 속으로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내 책상 한구석에는 작은 종이 한 쌍 놓여 있다.
우연히 눈에 띄어 무심코 흔들어보았더니 뜻밖에도 투명한 소리가 난다.
크리스마스트리에 장식으로 매다는 종인 줄로만 알았는데,
무슨 금속 같은 것에 도금한 진짜 종이었던 것이다.
높은 소리를 내는 것이 은종이고, 조금 낮은 소리로 울리는 것이 금종이다.
별로 눈여겨본 적도 없던 것이 소리를 내는 순간, 무엇을 발견했을 때와
똑같은 충격을 받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 소리는 먼지 속에 감춰져 있었던 것일까.
내 손이 닿기 전까지 그것은 하나의 돌멩이와 같은 존재였거나,
아니면 한 번도 존재해본 적 없는 그냥 텅 빈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지금 목숨을 지닌 새처럼 날개를 퍼덕이며 환한 대낮 속을 날고 있다.
옛날에는 하잘것없는 사람의 죽음이라 해도 죽음은 장엄하고 엄숙한
사건이어서 가장 큰 뉴스거리였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조종을 울렸으며,
사람들은 그것이 누구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인가를 궁금해 했다.
잠시 일손을 멈추고 죽은 자를 위해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고개를 숙여 슬픔을 표시했다.
그러나 존 던은 말한다.
그것이 누구를 위해 울리는 종소리인가를 묻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나를 위한 종소리, 내 죽음의 조종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도 완전한 섬일 수는 없다.
나는 홀로 있는 섬이 아니다. 아무리 홀로 떨어져 있으려고 해도 인간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섬이 아니다. 나는 대륙의 일부다.
아무리 작은 모래나 흙덩이라고 해도 그것은 광활한 대륙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존 던은 말했다.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에 모래 한 알과
작은 흙덩어리가 바다에 휩쓸려 가면
그만큼 대지는 가벼워지고 작아진다.”고….
그림은 긁는다에서 나온 말이다.
그림은 그리움에서 나온 말이다.
그림은 글에서 나온 말이다.
일본에 징용 온 조선 사람이
아오모리 탄광의 어두운 벽을
손톱으로 긁어 글을 썼대요.
어무니 보고 시퍼
고향의 그리움이
글이 되고
그림이 되어
남의 땅 벽 위에 걸렸대요.
아이구 어쩌나 어무니 보고 시퍼
맞춤법도 맞지 않은 보고 싶다는 말
한국말 ‘싶어’는 참을 수 없는 욕망의 언어
배에 붙으면 먹고 싶어 배고프고
귀에 붙으면 듣고 싶어 귀 고프고
눈에 붙으면 보고 싶어 눈 고프고
가슴에 붙으면 가슴 아파 가슴 고프고
“마음의 붓으로 그려 바친 부처님 앞에 엎드린 이 몸은…”
「보현십이가」의 한 이두문자처럼 해독하기도 힘든 그리움이 된대요.
옛날 옛적 이 일본 땅에 끌려온 조선 청년이
탄광 벽을 손톱으로 긁어 글을 썼대요.
벽을 긁는 글과 그림과 그리움은 벽을 넘는다.
__본문 중에서
서문 날게 하소서
읽기 전에
think 하나 흙과 디지털이 하나되는 세상
think 둘 종소리처럼 생각이 울려왔으면
think 셋 우물에 빠진 당나귀처럼
think 넷 뽀빠이와 낙타의 신화
think 다섯 벽을 넘는 두 가지 방법
think 여섯 세 마리 쥐의 변신
think 일곱 미키마우스의 신발
think 여덟 만리장성과 로마가도
think 아홉 당신은 정말 거북선을 아는가
think 열 국물 문화의 포스트모던적 발상
think 열하나 전통 물건에 담긴 한국인 생각
think 열둘 김치, 맛의 교향곡
think 열셋 선비 생각이 상商과 만나다
저자 소개
이어령
1934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 박사, 문학평론가,
이화여대 석좌교수, 동아시아 문화도시 조직위원회 명예위원장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조직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등 여러 신문의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월간 《문학사상》의 주간으로
편집을 이끌었다. 서울올림픽 개폐회식을 주관했으며,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냈다.
대표 저서로『지성에서 영성으로』, 『디지로그』,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축소지향의 일본인』, 『생명이 자본이다』, 『젊음의 탄생』등이 있고,
소설『장군의 수염』, 『환각의 다리』와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를 펴냈으며,
희곡과 시나리오「기적을 파는 백화점」,「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
「사자와의 경주」등을 집필했다.
2021년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예술 발전 유공자로 선정되어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제자(題字)_김병종(화가, 가천대 석좌교수)